
기나긴 부상 악몽과 성공적인 재기 그리고 친정팀과의 이별까지. 김형범(29)은 순탄치 않은 축구 인생을 걸어왔다. 하지만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김형범은 지난 2006년 전북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2008년에는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선수로서 최고의 나날을 만끽했다. 하지만 김형범은 2008년 성남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발목을 다치며 지독한 부상 악령에 시달렸다. 이듬해 복귀전에서 또 다시 부상을 당한 김형범은 이후 재활과 복귀의 악순환을 이어갔다. 보이지 않은 내일에 현역 은퇴까지 고려해야 했을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김형범은 지난해 대전으로 임대 이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4년 프로데뷔 이후 최다 출전인 32경기를 소화했고 5골 10도움을 기록하며 부상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대전에서의 활약상에 힘입어 4년만에 A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기대와 함께 '친정팀' 전북에 복귀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없었다. 이승현' 김동찬이 상무에 입대했지만 기존의 에닝요' 레오나르도' 서상민에 이어 새롭게 영입한 이승기' 송제헌' 박희도가 버티고 있었다. 경남의 러브콜을 받은 김형범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전북도 이적료를 대폭 낮추며 그의 앞날을 응원했다. 아쉬울 법도 하지만 그는 금새 툴툴 털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경남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맞이한 그는 "어떤 결정이였든 나를 위한 (구단의) 선택이었다. 대전에서 보여준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전에서 뛰던 실력이 60이라면 올해는 100이다. 올해가 진짜 김형범을 보여줄 기회”라고 말했다. '책임감'은 경남에서 얻은 김형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경남은 지난해 시도민구단으로는 유일하게 그룹A(상위리그)에 진출하며 주목받았지만 44경기에서 50골을 기록하는데 그치며 화력 부족에 시달렸다. 여기에 공격의 핵심 까이끼와 윤일록이 이적하면서 새로운 해결사의 등장이 절실했다. 경남이 김형범을 영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형범은 소위 '한방'을 가진 선수다. 특히 수세에 몰리거나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상황에서 '스페셜리스트'로 불릴만큼 K리그 최상급의 킥 능력을 자랑해왔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의 위력은 더욱 배가된다. 18일 제주도 전지훈련 중 가진 연변 FC와의 연습경기에서도 김형범은 팀이 0-1로 뒤지자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와 함께 상대선수 2명을 따돌리며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프리킥과 코너킥 상황에서도 날 선 발 끝을 자랑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김형범이 더 크게 보였던 이유는 에이스의 가장 큰 덕목인 책임감이 몸에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임감이 막중하다. 하지만 축구는 결국 팀 스포츠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나 혼자 빛나는 에이스가 아니라 동료들을 살리는 에이스로 제 몫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김형범은 "긱스처럼 오래 뛰고 싶다"고 답했다. 긱스는 불혹의 나이에도 영리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23시즌 연속 득점을 기록하는 등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잦은 부상 탓에 제 기량을 만개하지 못했던 김형범의 입장에선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다녔지만 지금은 요령이 생겼다"라고 운을 뗀 그는 "'몸은 느려질수록 두뇌 회전은 빨라지더라'라는 긱스의 말을 몸소 느끼고 있다. 지금 내겐 몇 골을 넣는지가 목표가 아니다. 긱스처럼 오랫동안 영리하게 오랫동안 볼을 차고 싶다. 부상만 없다면 얼마든지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라고 앞으로의 선전을 다짐했다.
인터풋볼 이경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