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분. 1시간도 채 안 되는 이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풀 타임 90분에 이르는 축구 경기를 소화하는 선수들에게도 별다른 기록 없이 52분을 뛰었다는 것은 아무 감흥을 줄 수 없다.
그러나 그 52분이 누군가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바로 삼성하우젠 K리그 2007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경남FC의 신인 박진이(24)다.
아주대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경남에 선발된 박진이는 3일과 4일 차례로 열린 K리그 개막전 7경기에 나선 134명의 선발 출장 선수 중 유일한 신인이었다. 수원의 하태균도 감격스런 데뷔전을 치렀지만 후반 32분 교체 출전이었다. 올 시즌 K리그를 밟은 92명의 신인 선수 중 박진이만이 선발 출장이라는 특권을 누린 것이다.
박진이는 “경기를 앞두고 너무 떨렸어요. 제 생애 그렇게 떨린 적은 처음이었어요. 시작 후에는 정신없이 뛰기만 했습니다”라며 자신의 K리그 첫 경기 첫 순간을 묘사했다. 그래서였을까?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진이는 그야말로 싸움 개처럼 사납게 울산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박진이의 모습이 박항서 감독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 박진이는 스스로의 장점으로 기동력을 꼽는다. 박항서 감독 역시 올 시즌 경남의 기동력 축구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가 박진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미드필드 후방부터 최전방 구석구석까지 활발히 뛰어다녔다. 적어도 울산 진영에 박진이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을 정도였다.
“감독님께서 연습처럼만 하라고 하셨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발 더 뛰는 것밖에 없잖아요. 중요한 개막전에 출전시켜 주셨으니 심장이 터져라 뛰겠다고 다짐했어요.”
둔탁한 면도 있었지만 이날 박진이의 플레이는 박수를 보낼 만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공격과 수비를 연결하고 상대 진영으로 과감히 들어갔다. 수비시 1차 저지선으로 상대 공격을 끊는 역할도 잘 수행했다.
박진이의 맹렬한 플레이가 계속되자 후반 들어 울산 선수들의 발은 무거워져 가기 시작했다. 그때 박항서 감독은 공격적인 전술과 선수 교체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 타이밍에 맞춰 박진이도 김근철과 교체되어 나오며 벤치에 앉았다. 후반 7분이었다. 미련은 남았지만 그때부터는 벤치에서 동료를 응원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아무리 울산이 강하다고 해도 공은 둥그니까 무슨 결과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반 중반부터 제가 정신을 차리고 경기다운 경기를 한 거 같아요. 더 많은 시간을 뛰지 못한 건 아쉽지만 감독님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고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박진이가 들어간 뒤 경남은 더욱 공격적인 색채를 띠었다. 결국' 후반 40분 뽀뽀의 프리킥을 까보레가 헤딩 동점골로 연결하며 경남은 우승 후보 울산을 상대로 한 원정 경기에서 값진 무승부를 거뒀다. 동점골이 터지던 당시 경남은 골을 기록한 까보레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와 벤치의 코칭스태프' 몸을 풀던 대기 선수들까지 일제히 환호하며 기쁨을 나눴다.
“울산이라는 강팀에게 선제골을 내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무승부로 끝났으니 분위기는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형들도 다들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원정 무승부에 큰 의미를 부여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초반에 정신 차리고 실점하지 않았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거든요.”
정신없는 데뷔전을 마친 박진이는 이제 홈 팬들에게 정식으로 인사할 기회를 잡기 위해 다시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오는 10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지는 포항 스틸러스와 홈 경기는 박진이가 가장 뛰고 싶은 경기다.
“감독님께서 출전시켜 주실지 모르지만 저는 뛰고 싶어요. 연고지 출신으로 경남FC에 왔으니까 다른 선수보다 애착이 특별합니다. 들어가서 단 1분이라도 뛴 뒤 정말 열심히 한다. 잘 뽑았다란 소리를 듣고 싶어요.”
데뷔전을 통해 신인이라는 부담감을 떨친 박진이. 경남의 2007시즌 성공과 신인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그가 더욱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승리의 춤을 추길 기대해본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