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마이다스의 손’ 안종복' 경남 부흥 이끈다

인터풋볼 | 2013-01-24VIEW 2343

대한민국 축구계에 그의 손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경남FC 제7대 대표이사로 선임된 안종복(57) 대표이사가 경상남도의 축구 부흥을 꿈꾼다. 23일 경남을 이끌게 된 안종복 대표이사는 “축구 행정 40년 노하우를 살려 경남을 도민 속으로 도민이 자긍심을 갖는 구단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확고히 했다. 그는 1975년 청소년 대표를 거친 선수 출신 행정가다. 현역 은퇴 후 국내 스포츠 마케팅의 1인자로 불리며 그 동안 한국축구 발전에 힘써왔다. 그가 몸 담았던 프로팀은 성적과 흥행 보증수표라 불릴 정도였다. 특히 부산 대우 로얄즈(현 부산아이파크 전신)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부흥을 이끌며 K리그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공을 세웠다. 1990년대 부산은 국가대표의 산실이자 프로축구의 독보적 존재였다. 1991년 정규리그를 제패했고' 1997년에는 프로축구 사상 첫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외에도 수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진정한 명문으로 거듭났다. 훌륭한 감독과 선수' 감독도 있었지만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안 대표이사(1996~2000 부산 단장)의 역할이 컸다. 스타를 활용한 팬 서비스는 물론 해외 프로팀' 국가대표팀을 초청해 경기를 가졌다. 다양한 팬층을 확보해 눈높이에 맞는 마케팅을 시도했다. 부산 시민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푸른색 셔츠를 입고 경기장을 찾았고' 구덕운동장 주변은 축제의 장이 마련됐다. 안 대표이사의 이런 숨은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휘 할 때쯤 부산의 모기업이었던 대우가 부도 위기를 맞으며 현대산업개발로 인수됐다. 안 대표이사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년 뒤 인천으로 건너가 미완의 기적에 도전했다. 2003년 인천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안 대표이사는 ‘제2의 부산’을 모티브로 항구 도시의 이미지를 살린 검푸른 유니폼' 1990년대 후반 부산 축구 부흥을 이끌었던 신범철' 김학철' 임중용' 김현수' 이용하' 이기부' 마니치 등을 영입해 2004년 K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불과 2년 만에 노력의 결실이 나타났다. 2005년 인천은 시민구단 최초로 프로축구 통합 1위에 오르며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에 고배를 마시며 우승을 놓쳤으나 변변한 스타 선수 한 명 없이 값진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 뿐만 아니라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시아 최초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2010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건립하는 추진력을 선보였다. 2011년 인천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난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해 남북체육교류협회 회장을 역임 하며 한국축구 발전에 꾸준히 힘을 보탰다. 안 대표이사는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현 제도적에서도 무의미 하다고 판단' 지난 13일 출마를 포기했다. 그 대신 K리그가 조금 더 정착할 수 있는데 심혈을 기울이기로 했다. 안 대표이사의 그간 업적을 봤을 때 경남의 미래는 밝다. 첫 단계로 모기업인 STX의 재정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 단체로부터 다양한 스폰서를 확보했다. 기존 STX에 농협' 경남은행' 경남체육회' 경남축구협회가 이사진에 합류했고' 16명의 기업 대표들을 재정 이사로 영입했다. 구단의 안정된 재정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걱정 없이 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는 팬들을 하나로 집결 시키는데 큰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안 대표이사는 “프로축구단의 존재 이유는 흑자 운영과 관중' 성적이다. 장기적인 마케팅 전략과 유소년팀 육성을 통해 장기 수익 모델을 개발하겠다. 이를 통해 경남을 사랑하는 열성적 팬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처럼 안 대표이사는 구단' 선수' 팬 삼위 일체를 통해 진정한 도민구단으로 거듭나려 한다. 단기간 성적보다 먼 미래를 내다본 경영으로 구단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 현재 시작 단계에 불과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본다면 경남의 부흥은 머지 않아 보인다. 인터풋볼 이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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