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사라진 1년' 김진용은 살아 있다

관리자 | 2008-02-26VIEW 2054

한국 축구는 득점력 있는 전방 스트라이커의 부진으로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십년 전 황선홍이 있고' 최용수가 있고' 김도훈이 있을 때는 ‘유럽을 상대론 기도 못 피다 아시아만 만나면 펄펄 나는’ 공격수라 원망했지만 지금은 그들마저 그립다.
 
동아시아 선수권에서 1경기에서 2골을 터트린 박주영의 플레이를 ‘부활’로 표현하고' 북한 대표팀에 등장한 남다른 골 감각의 공격수 정대세에게 흠모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는 것도 현재 한국 축구 골잡이 부재로 인한 심리적 동요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말 골잡이의 씨가 말라버린 것일까? 그렇다고 단정은 하기 힘들다. 어떤 선수는 자신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의 성과로 보여줬지만 소속팀 감독과 동료 외에는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어떤 선수는 불운하게 부상과 싸우는 선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 포함되는 선수는 경남의 김진용이다.
 
올해 프로 5년 차인 김진용은 객관적 기준에서 ‘반짝 스타’에 가깝다. 2004년 울산에 입단' 다음 해인 2005년 8골 2도움을 기록하며 박주영' 김도훈과 함께 토종 공격수의 자존심을 지키며 관심을 모았던 공격수다. 당시 김진용은 컵대회에서는 박주영과 함께 득점 2위(1위는 산드로 히로시)' 시즌 전체를 따져서는 득점 1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무릎 인대 부상으로 후반기를 거의 날려 먹은 것을 상기해야 한다. 또 전체 득점에선 10위권 밖이지만 토종 공격수 중에서는 박주영과 김도훈에 이은 3위였다. 당시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도 선발되었고 북한과의 통일축구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축구 선수에게 치명적인 무릎 인대 부상이었지만 김진용은 수술이 아닌 재활을 치료 방법으로 선택했다. 2006년 같은 부위를 다친 이동국은 수술을 택했는데 부상 정도에 따라 재활도 선택이 가능하다. 특히 인대 재건 수술보다는 재활이 부상 이전의 운동 능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해 가능하면 재활을 택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그 시즌 울산은 우승에 성공했지만 김진용은 그 기쁨을 절반도 채 누리지 못했다.
 
2006년에는 뜻 밖의 선택을 했다. 신생팀 경남으로의 이적이었다. 울산의 유능한 공격 자원에서 경남의 간판이 된 김진용은 부실한 후방 지원에도 7골 4도움의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간판이라는 타이틀에 100% 부합하진 않지만 팀 전체 득점의 1/5 가량을 해냈다는 것은 괜찮았다.
 
문제는 확실한 도약을 꿈꿨던 2007년이었다. 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해 K리그의 간판 골잡이가 되겠다던 꿈은 전지훈련 중 입은 발목 부상으로 산산 조각났다. 대학 시절 이미 치명적인 발목 부상으로 독일까지 날아가 수술을 받고 돌아왔던 그 부상이 재발한 것이다. 김진용은 전지훈련지인 브라질(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의학에 관해선 유럽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다)에서 수술을 받고 팀이 돌아간 뒤에도 홀로 남아 재활 치료를 받았다.
 
K리그가 한창 시즌 중이던 5월 김진용은 1차 재활 훈련을 마치고 귀국했다. 2차 재활 훈련은 서울에서 진행됐고 경남은 미드필드' 수비의 조직력과 까보레' 뽀뽀의 득점포를 앞세워 리그 상위권을 달리는 돌풍을 만들고 있었다. 예정대로 8월 복귀한다면 플레이오프를 노리는 팀의 사투에 김진용이 힘을 실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후반기 복귀를 위해 재활하던 김진용은 또 한번 발목을 다쳤다. 김진용의 2007시즌이 완전히 끝났음이 선고되는 순간이었다. 2007년' K리거 김진용은 어떤 기록도 없다. 출전 경기 0' 출전 시간 0' 슈팅 0' 득점 0이다. 부상과 수술' 재활 치료로 2007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김진용이 부상의 망령에서 헤어난 것은 근 1년 만인 지난 1월이었다. 뒤늦게 경남의 키프로스 전지훈련에 참가했고 마지막 연습 경기에서 30분 정도를 소화했다. 김진용은 1년 만의 실전 경기에 대해 “아직 몸 상태는 60% 정도지만 30분 가량은 뛸 만 했다. 부상은 괜찮고 재발에 대한 걱정도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공백이 길어지면 선수가 갖는 부담도 커지게 된다. 경기 감각이 빠르게 돌아오지 않으면 2차로 생기는 슬럼프가 오기 때문이다. 그 점은 김진용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1년을 통째로 날려 먹은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잘해야 하고' 그게 부담감으로 오겠지만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더 강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부담감을 떨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 마음가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낫는다고 무조건 주전을 차지할 리 없다. 지금 팀에는 (정)윤성이 같은 좋은 공격수 있고' 그래서 팀이 강해졌다. 우선은 후반 조커로 투입된다고 생각하고' 내 몫을 하고 나오는 데 집중하고 싶다. 그렇게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 뒤 몸 상태와 경기 감각이 100%가 되면 사라진 1년 치의 활약을 보여주고 싶다.”
 
4년 째 경기장 안팎에서 만난 김진용은 참 순수한 선수다. 긴 부상으로 힘이 들 때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는 어린 시절 ‘내가 자라난 고향의 팀을 위해 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많은 것을 보장하는 팀을 떠나 가난한 도민 구단으로 왔다. 비록 2007년은 부상이 그의 꿈을 날려버렸지만' 스물 여섯 청년의 축구 인생은 어쩌면 지금이 또 하나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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