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김성재' 신생팀 이끄는 베테랑 미드필더

관리자 | 2006-08-24VIEW 2018

‘삼성 하우젠컵 2006’은 전기리그에서 고전했던 두 팀의 약진이 돋보였다. 전기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던 제주는 하우젠컵 중후반까지 서울과 함께 선두권을 형성하며 상승곡선을 그렸고 13위였던 경남은 강팀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연승 가도를 내달렸다.

특히 올시즌 K리그 신생팀 경남의 변신은 눈부셨다. 하우젠컵 중반까지만 해도 좀처럼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경남은 독일월드컵 후 재개된 K리그 5경기에서 무패(4승1무)행진을 기록하며 3위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기세를 몰아 후기리그에서 ‘신생 돌풍’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경남 상승세의 원동력으로는 신생팀이 겪게 되는 적응기간이 끝났다는 점과 박항서 감독의 지도력' 선수들의 전술 이행 능력이 향상됐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박항서 감독의 지휘 능력에는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에 따른 ‘맞춤형 전술’의 개발이 포함된다. 실제로 박항서 감독은 휴식기 후 재개된 K리그에서 단 한 번도 같은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적이 없다.

박항서 감독의 ‘팔색조 용병술’이 가능하도록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K리그 8년차 베테랑 미드필더 김성재(29)다. 김성재는 경남에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장해 공수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상대 공격을 미드필드 일선에서부터 차단시키는 강한 수비력과 공격전개의 시발이 되는 패스력으로 경기 템포를 조절해가는 리딩 능력이 뛰어나다.

상황에 따라서는 최후방 수비라인으로 내려가 수비와 미드필드를 오가며 끈끈한 수비조직망을 형성하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후방에서 빠르고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공격수를 옥죄는 동시에 기회가 생기면 미드필드로 올라가 허리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하도록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김성재의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경남은 경기 중 수시로 유연한 대처를 보일 수 있었다. 스리백에서부터 파이브백까지 전술 활용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수비에서의 안정을 바탕으로 공격에 집중하는 경남의 특성상 김성재에 대한 의존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신생팀에서의 8개월

지난 시즌까지 FC서울의 ‘살림꾼’으로 활약했던 김성재는 올시즌 고향 마산을 연고로 하는 경남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며 ‘귀향’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훈련과 도전이 필요했던 시점이었고' 자신을 원하는 팀에서 축구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서울에서의 잔류를 권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저는 한 팀에 오래 있다 보니까 좀 지치는 느낌이었어요. 더 적극적으로 뛸 수 있을만한 동기가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팀을 옮겼죠. 아무래도 신생팀이다보니 여러 환경들이 전 팀에 비해 아쉬운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니까 팀에 대한 애정을 갖고 감수해야죠.”

팀 전술이 자신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선수층이 두터웠던 전 소속팀 서울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서울에 있을 때는 제가 일정 부분을 감당하면 옆에 있는 다른 선수들이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하지만 경남에서는 제 영역도 살펴야 하고 옆에 있는 선수들도 봐줘야 해요. 수비에도 훨씬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상대 키플레이어를 묶어야 한다는 책임도 크죠. 감독님이 많은 걸 요구하시지는 않지만 부담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때문인지 올시즌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다. 포지션별로 경쟁 구도가 형성돼있던 서울에서와 달리 경남에서는 다소 안일한 마음이 들었다는 고백이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보니 매 경기 출장이 이어지면서 체력적인 소모도 많았다. 스스로 전반기에 부진했다고 느끼는 이유다.

김성재의 부담은 최근 기량이 부쩍 향상된 김성길과 김근철 등 ‘유망주’들이 덜어주고 있다. 이들은 하우젠컵 들어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김성재에게 의존하던 경남의 전술을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김근철의 경우 기량이 좋고 미드필드에서 많이 뛰어주고 있어 김성재와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다.

“근철이와는 이 팀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함께 뛰면 무척 편해요. J리그에서 뛴 경험도 있고 득점력과 프리킥' 슈팅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죠. 미드필드에서 많이 뛰어주고 있는데다 제가 수비에 집중하면 근철이가 공격 쪽을 맡아주고 있어 서로 잘 맞는 것 같아요. 근철이는 앞으로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될 거예요.”

모따 ‘백태클 사건’ 해명하고 싶었다

전반기 동안 축구팬들 사이에 김성재가 최고의 화제 선수로 떠올랐던 ‘사건’이 있었다. 전기리그 8라운드 성남전에서 상대 공격수 모따와 볼다툼을 하다 모따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김성재의 태클에 걸린 모따는 오른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대다수의 축구팬들은 김성재를 두고 살인태클을 가한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제가 만약 이름있는 훌륭한 선수였다면 언론 등을 통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이런 때 해명조차 할 수 없는지' 제가 참 못났다고 생각했어요. 축구를 모르거나 경기장에서 직접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결과적으로 제가 그저 ‘나쁜놈’인 거예요. 의도적으로 태클을 가한 것처럼 돼 버려서 마음이 참 아팠어요.”

“당시 제가 볼을 갖고 공격하려던 순간이었는데 하프라인 부근에서 모따한테 커트됐어요. 역습을 맞게 되니까 저는 다시 볼을 뺏어내야 했고요. 그런데 창원 운동장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까 모따가 툭 차는 순간에 볼이 길게 나간 거예요. 저는 역습을 막아야 되는데 스피드로는 모따한테 못 당하니까 발을 내민거고 모따는 그 볼을 차야겠다는 생각에 달려들어온 거죠. 저도 오른발로 차고 모따도 오른발을 갖다댔는데' 슬라이딩할 때 왼쪽 다리가 따라오면서 밀린 거예요. 저는 처음에 모따가 누워있는데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어요. 볼을 향했던 태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심판한테는 파울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정도였거든요.”

“경기 후에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축구게시판 보니까 생각지도 못한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놀랐어요. 마음이 상한채로 있으니까 아내가 오히려 우스개 소리로 위로하더라고요. 많이 유명해지겠다고. 그래도 김성재라는 선수를 알기 때문에 그런 글들을 올리는 게 아니겠냐고' 다 팬이라고 생각하라고. 사실 그 사건 이후로는 컴퓨터를 멀리 하게 됐어요.”

김성재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은 의도적으로 백태클을 가했던 것으로 오인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성재는 선수 간 동업자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 경기마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양팀 모두 페어플레이를 하고 다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정도다. 상대 선수를 상하게 하는 고의적 파울은 다음 경기에서 또다른 보복을 부르기 때문이다. 모따에 대해서도 본의 아니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축구인생 20년' ‘아직도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니 20여년 축구만 하고 살았다. 축구선수로는 정점에 이른 나이인데도 스스로를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다른걸 20년 동안 했으면 뭘 해도 했을텐데 아직도 축구를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싶을 때가 있단다.

곰곰이 지난 시간을 되돌려보면 그래도 자신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축구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어렸을 때 TV로 중계되는 월드컵을 보면서 열광하고 골이라도 들어가면 본인 표현대로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김성재는 일요일 새벽마다 축구공을 들고 나가 해질녘까지 공을 차다 들어왔다.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발톱이 빠질 정도였다. 이런 그를 눈여겨 본 마산 합포초등학교 축구부 코치의 제의가 들어왔다. 단숨에 하겠다고 답했다. 그 순간에도 그저 축구가 미치도록 좋았을 뿐 ‘업’으로 삼게 될 줄은 몰랐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직업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어요. 너무나 당연하게 마산중앙중-마산공고-한국체대로 가야된다고만 생각했죠. 나중에야 축구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웃음)”

한국체대 대신 한양대를 택한 김성재는 1학년 때부터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며 1996 아틀란타 올림픽대표팀에도 발탁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런데 소집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대표팀에 처음 소집되는 거라 정신이 없어서 용품을 제대로 못 챙겼어요. 운동화도 안갖고 가고 여유분의 신발도 없어서 그냥 구두를 신고 나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이 안되는 얘기죠. 처음에 잘못 걸린다 싶더니 사소한 문제로 계속 걸리더라고요. 완전히 ‘꼴통’으로 낙인찍혔죠.”

이후 대표팀과는 큰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1년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하고 상비군에 뽑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K리그에서 안양이 우승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 상비군 멤버가 됐지만 2001년 동계훈련 후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동계훈련하고 돌아왔을 때까지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몸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걸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휴가 때 놀아버렸어요. 다시 팀이 소집돼 연습경기를 하는데'  박항서 감독(당시 대표팀 코치)님이 보러 오셨다가 몸상태가 엉망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가셨죠. 축구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시기예요.”

“기회는 몇 차례 더 있었어요. 이상하게 몸이 안 좋거나 경기력이 엉망인 날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히딩크 감독님이 왔다 가셨다더라구요. 히딩크 감독님의 스타일도 배워보고 경력도 쌓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친 거죠. 그 때가 가장 아쉬워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는 겨울 휴가 때 몸 관리 잘 하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손에 잡힐 듯 했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돌아보면 아쉬움만 짙게 묻어나는 기억이다.

“20년 동안 축구만 했는데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싶어요.(웃음) 아직도 축구에 눈을 뜨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요. 경기가 잘 풀릴 때는 시야도 넓어지고 경기가 잘 보인다 싶다가도 경기에서 죽을 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 게 반복되는 거죠.”

“경남' 타팀이 쉽게 이기지 못하는 팀이 될 것”

그의 말대로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축구다. 그래도 프로생활 8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성실성’에 있다. 정작 본인은 ‘지도자를 잘 만나서’라며 겸손해한다.

“운이 좋았어요. 지도자와 궁합이 맞지 않아 운동을 그만 두는 선수들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저는 지도자복이 있었던 셈이죠.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모습을 선생님들이 잘 봐주셨던 것 같아요. 저도 나이가 좀 드니까 보이는 부분인데'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성실한 선수들에 대한 감독님들의 신뢰가 더 큰 것 같아요.”

부상으로 잠시 주춤한 상태인 그가 빨리 그라운드로 복귀해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담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경남이 더 이상 전기리그에서처럼 타팀의 ‘1승 제물’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 후기리그에서 경남의 돌풍을 기대해도 좋다는 것이다.

“전반기에는 경기를 주도하고도 한 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직력과 응집력' 투쟁력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경남은 다른 신생팀들보다 조직력을 갖추는 기간이 더 단축되는 느낌이에요. 전반기에는 타팀들이 경남을 1승 제물로 생각했지만 하우젠컵을 통해 더 이상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우리팀은 쉽게 이기지 못하는 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스포탈코리아 배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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