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600경기 출전’ 김병지' 그가 살아있는 전설인 이유

인터풋볼 | 2012-10-07VIEW 2075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42)가 K리그 6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김병지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남FC와 FC서울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35라운드 경기에서 어김없이 경남의 골문을 지켰다. K리그 최초의 600경기 출전을 기록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1992년 데뷔한 그가 20년 동안 매 시즌 평균 30경기를 뛰며 이룬 대업이었다. 출발은 초라했다. 군 제대 전까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상무 전역 후 1992년 울산 현대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무명이었지만 울산에서 대표팀 골키퍼였던 선배 최인영(현 전북 코치)과 동고동락하며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었다. 드디어 1992년 9월 2일 울산 공설운동장에서 유공(현 제주)을 상대로 K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 경기에 함께 선발로 나선 신홍기가 A대표팀 코치가 됐고' 김병지의 K리그 첫 실점의 도움을 김봉길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기록한 것을 보면 세월의 무게가 절로 느껴진다. 김병지는 당시 차범근 울산 감독의 신임 아래 K리그에서 꾸준히 출장할 수 있었다. 데뷔 후 3년 동안 62경기에서 나서 57골만 허용하며 능력을 인정 받았고' 1995년 6월 5일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에서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었다. 이후로는 승승장구였다. 국가를 대표해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나섰다. 또한 하프라인까지 드리블을 치고 나오는 공격적인 플레이와 컬러풀한 꽁지머리는 그의 상징이 되어 수 많은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1998년 10월 24일은 ‘공격형 골키퍼’ 김병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날이었다. 1차전에서 패한 포항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 이기지 못하면 탈락하는 상황에서 후반 45분 김병지는 프리킥 상황에서 상대 골문으로 돌진했고' 극적인 헤딩골을 터뜨렸다. CNN 등 주요 외신에 보도될 만큼 화제가 된 명장면이었다. 김병지는 “‘공격하는 골키퍼’ 김병지의 이름을 각인시킨 잊을 수 없는 멋진 경기였다”고 회상했다. 2001년 30대에 접어든 김병지는 9년 동안 정든 울산을 떠나 포항으로 적을 옮겼다. 포항에서 뛴 5시즌 동안 0점 대 방어율 2차례' 1점 방어율 2차례를 기록할 정도로 기량엔 변함이 없었다. 친정팀 울산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 ‘김병지의 저주’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 김병지는 “2001년 FA컵에서 울산의 정정수와 김현석의 페널티킥 2개를 모두 막고 연장에서 이긴 경기”를 자신이 최고의 선방을 선보였던 경기로 꼽기도 했다. 다만 2004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섰지만 라이벌 이운재의 선방에 막혀 우승 트로피를 놓친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 장면이다. 김병지에게도 은퇴의 위기는 있었다. 서울에서 뛰던 2008년 1월 약 5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치료에 들어간 그를 두고 “이제 김병지는 끝났다”는 주위의 비아냥도 많았다. 하지만 김병지는 이를 악물고 재활에 성공했고' 2009년 39세의 나이에 고향팀 경남에 합류해 노장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경남의 어린 선수들에게 ‘삼촌’으로 불리며 골문을 지킨 그는 500경기 출전' 200경기 무실점에 이어 600경기를 채운 K리거가 됐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은 김병지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김병지는 “신의손의 최고령 출전기록(44세 7개월 17일)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700경기 출전이다. 올 시즌엔 페널티킥으로 4호골에 도전하고 싶다”면서 “목표를 세우는 이유가 있다. 그래야만 내가 가지고 있는 진가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 과제를 만들었다. 김병지의 변치 않는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를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게 했다.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인터풋볼 채태근 기자
  • 비밀글 여부 체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