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169cm 단신 공격수의 반란' 축구를 키로 하나요?

서호정 | 2009-10-22VIEW 2381

“전남에 있는 (정)경호가 저보다 작은 건 확실하고요' 그 외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구단 공식 홈페이지와 연맹 자료에 나온 프로필에 의하면 신장 168cm. 본인이 알고 있는 정확한 키를 물으니 그보다 딱 1cm가 더 큰 169cm란다. 대충 170cm라고 둘러대도 될 법하지만 김동찬(23' 경남)은 굳이 자신의 신장을 160대에 맞췄다. 더 좋은 체격조건과 운동 능력을 원하는 현대 스포츠의 흐름은 축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한국 축구도 185cm 이상은 넘어야 신체 조건이 괜찮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 속에서 170cm도 채 안 되는 단신 선수가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치열한 몸싸움과 제공권 경합이 필요한 최전방 공격수에게 말이다. “어떤 선수들 얘길 보면 키가 작아서 별에 별 음식을 다 먹었다는데 저나 제 부모님은 키를 키우려고 특별히 노력한 건 없었어요. 작은 체구 때문에 손해 본다고 느낀 적도 없었어요. 축구를 시작한 뒤로 늘 팀에서 가장 작은 선수였었지만 주전으로 나서는 건 저였거든요.” 김동찬은 키가 축구 선수로서 성장하는 데 콤플렉스로 작용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보다 한 뼘은 큰 선수들을 제치고 빠져나가는 걸 즐겼다. 생각해보면 세계 축구 역사의 절반 가량은 단신 선수들이 썼다. 디에고 마라도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가 그랬고 지금의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스가 그렇다. 한국 축구에도 이영무' 조광래' 이영진' 이천수' 최성국이 장신 선수들을 농락하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신장은 작지만 저돌적이고 과감한 공격으로 상대 수비수를 뚫는 김동찬의 플레이는 테베스와 닮았다고 해서 '경남의 테베스' 혹은 '찬베스'로 불린다. 박지성의 모교인 수원 세류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한 김동찬은 수성중학교를 거쳐 설동식 감독이 이끄는 제주도의 서귀포고등학교에 스카우트됐다. 축구 선수로 더 크게 성장하겠다는 꿈 하나를 안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간 김동찬은 천부적인 득점력으로 고교 시절에만 50골 이상을 터트렸다. 1학년 때부터 주전 공격수로 나서며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었고 3학년 때는 서귀포고 역사상 처음으로 뭍에서 열린 대회(부산 MBC배)를 석권했다. 호남대 진학 후에도 거칠 것이 없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지만 전국 대회에서 김동찬은 늘 상대 팀의 경계 대상 1호였다. 결국 1학년이 끝날 때 즈음에 당시 창단한 경남FC에 우선 지명됐다. 호남대는 재학 중인 선수를 프로에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신연호 감독(현 단국대 감독)은 김동찬의 재능이 큰물에서 더 빨리 빛을 봐야 한다는 판단에 학교 측을 설득해 프로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 신연호 감독은 “체구가 작아 지도자 입장에선 걱정도 됐지만 뛰어난 골 감각과 위치 선정' 순발력으로 단점을 메우는 노력형 선수였습니다. 말 수는 적지만 늘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성실한 선수였죠”라며 김동찬의 재능을 설명했다. 하지만 경남 이적 후 2년 간은 참담했다. 프로의 벽에 부딪힌 김동찬은 축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고 싶었던 작은 야생마에겐 골을 못 넣는 것 보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게 더 괴로웠었다. 2007년 컵대회에서 1골을 기록한 것이 활약의 전부였던 김동찬은 그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천운이 왔다. 박항서 감독이 팀을 떠나고 조광래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 내 주전 경쟁이 백지 상태로 다시 시작된 것이다. 낮은 연봉을 감수하고 팀에 남은 김동찬은 조광래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동계 훈련 내내 비지땀을 흘렸고 조금씩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4월 26일 서울과의 홈 경기에 교체 출전하며 시즌 첫 출전에 성공한 김동찬은 3경기만에 대전을 상대로 1골 1도움을 터트리는 활약으로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서울전에는 죽기 살기로 뛰었죠. 그 다음 수원전에는 선발 출전했는데 잘했던 것 같고' 이어진 대전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인정을 받았죠. 당시에 우리 팀 공격수들이 부상자가 많고 외국인 선수들이 부진해서 제게 기회가 왔는데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후반기에는 수원' 대전' 성남' 포항을 상대로 4경기 연속 골을 터트리며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시즌 7골 3도움으로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은 김동찬은 고교 시절의 추억이 서린 제주에서 열린 FA컵 4강전에서 국민은행을 상대로 혼자 5골을 터트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6골로 FA컵 득점왕에 등극한 뒤에는 대표팀 선발이라는 깜짝 선물도 받았다. 발목 부상으로 닷새 만에 소속팀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대표팀의 긴장감은 소속팀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기억이 있어요. 아직은 대표팀이 먼 곳이라고 느껴지지만 다시 한번 가게 된다면 그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대표팀에서 입은 발목 부상의 여파는 2009시즌 전반기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손가락 골절 부상까지 겹친 김동찬은 전반기에 단 1골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여름 이후 다시 컨디션을 올렸고 최근 9경기에서 9골을 집중시키는 무서운 화력을 발휘하고 있다. A급 토종 공격수의 기준인 시즌 10골에도 도달했다. 김동찬의 상승세는 곧 경남의 상승세로 이어지며 6강 경쟁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김동찬이 골을 기록한 9경기에서 경남은 7승 2패를 기록 중이다. 경남 승리의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팬들이 김동찬의 기량과 가치를 주목하고 있지만 본인은 여전히 팀 내 경쟁에 대한 경계심을 놓치지 않는다. “프로에 와서 2년 간 2군 선수로 힘든 시간 보내서 그런지 골보다 꾸준히 경기에 나서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기고 있을 때 감독님께서 체력 안배 차원에서 빼주시면 사실 기분이 나쁘거든요.” 김동찬이 프로에 와서 기록한 18골 중 헤딩 골은 하나 밖에 없다. 그는 작은 키로 인해 제공권 싸움이 불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머리로 골을 넣을 기회가 적은 대신 그는 오른발을 단련시켰다. 빠른 타이밍에 터지는 김동찬의 강력한 오른발 슈팅은 K-리그의 숨은 명품 중 하나다. 페널티 박스에서 그의 오른발에 공이 걸리면 여지 없이 골대 구석으로 꽂힌다. 올 시즌 김동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인천 원정에서의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 장면만 봐도 오른발 슛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제 단점을 아니까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선 특별한 무기 하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슈팅 연습을 했죠. 동료들한테는 가급적이면 크로스를 낮고 빠르게 달라고 하죠. 그래야 제가 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요.” 지난 시즌 경남은 최종전까지 치열한 6강 싸움을 펼쳤다. 김동찬은 전북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에게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안겨줬지만 경남은 역전패를 당하며 패퇴했다. 김동찬은 “이번에는 희생양이 될 생각이 없어요. 이기고 있어도 공격수들이 골을 넣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지금 경남의 힘입니다.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기고 6강에 갈 겁니다”라며 남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는 500일 된 여자 친구도 아담 사이즈라고 한다. 혹시 2세를 생각하면 키 큰 여자를 만나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동찬은 “키가 작아서 딱히 불편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생각하기 나름이죠”라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정말 김동찬에게 작은 키는 세상을 사는 데도' 그라운드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도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그냥 키는 조금 작지만 그보다 훨씬 거대한 기량과 정신력을 갖춘 공격수가 바로 경남FC의 23번 김동찬이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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