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K-리그 뒤흔드는 '조광래 유치원'

서호정 | 2009-09-15VIEW 2195

지난 주말 열린 K-리그 23라운드의 스포트라이트는 치열한 승부와 핸드볼 판정 논쟁이 벌어진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맞대결' 무려 여덟 골을 터트리며 K-리그 역사에 새 장을 연 포항 스틸러스가 가져갔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관심을 받았어야 할 팀은 4연승에 성공한 경남FC였다. 올 시즌 강릉' 춘천 등 홈구장을 ‘원정팀의 무덤’으로 만들며 돌풍을 일으키던 K-리그 막내 강원FC와 그들의 홈 팬들에게 처음으로 0-4 패배라는 치욕을 안겨 준 경남의 경기력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김동찬의 감각적인 선제골을 시작으로 신인 이훈과 이용래가 릴레이 골을 터트렸다. 추가 시간 김동찬의 힐 패스에 이은 인디오의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마무리 된 네 번째 골은 현재 경남의 조직력과 자신감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위대한 도전 혹은 위험한 도박' 조광래의 리빌딩 불과 한달 전만 해도 경남의 이런 성공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조광래 감독 자신마저도 2010년을 목표로 팀을 리빌딩 하는 만큼 올 시즌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예상보다 빠른 경남의 성공은 프로 1' 2년 차 신예들의 급성장에서 기인한다. 그들의 잠재적 가능성이 잇단 승리로 자신감이라는 추진제를 만나 조기에 폭발한 것이다. 경남의 돌풍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시작된 조광래 감독의 결단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박항서 감독에 이어 경남의 2대 감독으로 부임한 조광래 감독은 지난 시즌 김진용' 산토스' 박종우' 김근철' 김효일' 김성길 등 전임 감독이 남기고 간 유산들을 활용해 막판까지 치열한 6강 싸움을 펼쳤다. 비록 정규리그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FA컵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하지만 조 감독은 시즌이 끝난 뒤 경쟁력 있는 유산을 스스로 청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김동찬' 인디오' 이상홍' 서상민을 제외하곤 2008시즌의 주전 대부분을 내보냈다. 이적이 되지 않은 선수들에게도 팀을 알아보라고 통보했다. 이런 조광래 감독의 선택에 축구 관계자부터 언론' 팬에 이르기까지 무모한 도전 혹은 위험한 도박이라는 우려가 대다수였다. 올 시즌 개막 후 11경기 연속 승리를 쌓지 못하고 하위권에서 맴돌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조광래 감독을 비판하는 이도 많아졌다. ▲ 도민 구단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조광래 감독의 위험했던 선택은 경남FC가 갖고 있는 도민 구단으로서의 한계에서 출발했다. 지난 연말 경남은 주요 스폰서 중 하나인 두산 중공업으로부터 후원 중단 통보를 받았다. 경남에게 인건비 절감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고액 연봉자를 줄이는 대신 드래프트에서 가능성 있는 선수를 대거 선발하는 방식으로 팀 스쿼드를 완전히 갈았다. 지난해 말 경남이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한 선수는 총 17명이다. 1라운드부터 6라운드까지 모두 지명권을 행사했고 번외 지명으로 11명을 선발했다. 올 시즌 경남의 선수단 40명 중 43%에 해당하는 수치다. 나머지 선수들 중 대부분도 프로 2' 3년 차에 불과하다. 현재 경남에서 K-리그 10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김병지' 이상홍' 박재홍' 김동현 네 명뿐이다. 그나마도 김동현과 박재홍은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머물고 있다. 프로 무대에서 승부를 가르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하는 경험을 포기한 조광래 감독은 1' 2년 차 햇병아리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에 나섰다. 전반기에 경남은 경험에서 타 팀과 너무 큰 격차를 보였고 좋은 경기를 하고도 승부를 가리는 상황에서 번번이 실패하며 2승 8무 4패를 기록했다. 믿었던 김동찬과 인디오마저 동반 부진에 빠지며 조광래 감독의 도전은 그냥 실패한 도박으로 끝나는 듯 했다. ▲ 조광래 유치원이 간다 그랬던 경남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라운드 부산전과 21라운드 인천전 승리였다. 특히 인천전에서는 추가 시간에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곧바로 김동찬이 ‘버저 비터 골’을 터트리며 극적인 승리를 만들었다. 숨막히는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거둔 승리는 선수들에게 ‘이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팀의 최후방을 사수하는 베테랑 김병지는 “동생들이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내며 절대 지지 않는다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라며 팀 상승세의 요인을 설명했다. 이어진 전남과의 홈 경기에서는 김병지의 페널티킥 선방과 상대 측면 배후를 공략하는 전술로 4-1로 대승을 거뒀고 그 여파는 강원전까지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분데스리가의 슈투트가르트는 ‘마가트 유치원’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었다. 중소 클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검증된 선수가 아닌 알렉산더 흘렙' 필립 람' 케빈 쿠라니' 안드레아스 힝켈' 티모 힐데브란트 등 갓 스물을 넘은 선수들을 발굴해 슈투트가르트에게 리그 준우승을 안긴 바 있다. 스타를 불러들일 돈이 없는 도민구단 경남 역시 결국은 스타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고 조광래 감독은 김동찬' 김영우 이훈' 이용래' 김주영' 김종수' 박민' 안상현 등의 원생으로 자신만의 유치원을 만들어냈다. 마치 대나무 밭에서 죽순이 자라듯 매일 매일 쑥쑥 올라가는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바라보는 조광래 감독은 2010년 내려고 했던 승부를 보다 앞당길지도 모른다. 리그 14위에서 8위로 뛰어오른 경남의 연승 행진과 조광래 감독의 도전이 어디까지 갈지는 이제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증유의 상승세로 번지고 있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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