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신데렐라맨’ 정윤성' 역경을 딛고 K리그의 중심으로 우뚝 서다.

손춘근 | 2007-09-24VIEW 2441

엊그제 개막한 듯' 언제나 반가운 한국 축구의 젖줄 K리그가 벌써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각 팀당 다섯 경기를 남겨놓은 현재 성남과 수원의 선두경쟁이 관심을 끌지만' 그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신생팀 경남의 상승세다. 현재 경남은 울산에 이은 4위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 시즌 창단한 경남은 박항서 감독의 분석 축구로 120%의 전력을 발휘하며 후반기 5연승을 기록했다. 5연승을 달리는 동안 그들은 전북' 성남' 서울 등 만만치 않은 상대를 보기 좋게 격파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경남 상승세의 중심에는 단연 정윤성이 있다. 까보레와 함께 경남의 주포로 평가되는 뽀뽀가 부상에 신음하고 있지만 정윤성이 있기에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었다. 올 시즌 후반기부터 경남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9경기에 출전해 4골 3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거의 1경기당 1 공격포인트에 가까울 정도로 폭발적인 공격력이다. 경남 이적 후' 소속팀에 승리를 선사하고 있어 ‘골든보이’라고도 불리는 정윤성은 벌써 K리그 5년차 선수다. ‘초고교급 스트라이커’로 각광 받던 그는 지난 2003년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그러나 정윤성은 화려한 프로생활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2군을 전전하며' 서서히 팬들의 기억 속으로 잊혀져 갔다. 그리고 수원의 화려한 선수들 틈에서 자신을 옥죄며 힘들어하던 그가 선택한 것이 경남으로의 이적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절망적인 심정을 안고 결정한 그의 이적은 경남에 5연승을 선사했으니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절망을 딛고 화려한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에게 ‘신데렐라맨’이라는 별명도 어울릴 법하다. 성공적으로 부활한 정윤성을 경남 함안에 위치한 경남FC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오히려 병으로 돌아온 ‘초고교급 스트라이커’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경남FC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이날 경남은 4시 훈련에 앞서 팀 미팅이 있었다. 이는 곧 훈련을 마치고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멀리 내려온 김에 훈련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던 경남의 훈련 분위기는 상당히 밝았다.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정윤성의 표정은 특출 나게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 이적 후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었고' 이날 가진 슈팅 훈련에서도 입이 쩍 벌어지는 그림 같은 슈팅을 두 골이나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이 고난이도의 슈팅 훈련에서 골을 넣은 선수는 정윤성이 유일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는 이날 보여준 시원한 슈팅처럼 결코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았다. 고교시절 U-16 대표팀 소속으로 브루나이전에서 9골을 몰아넣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에게는 어린 시절 집중된 스포트라이트가 오히려 독이었다. “그 때는 귀신이 씌었던 것 같아요. 때리면 들어갔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 때는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때리면 들어갈까 싶은데도 들어갔으니까요.” “그런데 한참 잘 나가니까 자만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지금 느낀 거지만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요. 고3 때는 진로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좋은 대우를 받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그렇지도 못했거든요.” ‘초고교급 스트라이커’라는 수식어가 자만을 불러왔고 결국 그 자만으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 당시에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뒤처졌다는 것이 정윤성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에 와서도 부담감이 더 커졌다. “처음에 프로에 왔을 때 2~3년은 배울 생각이었어요. 다른 선수들은 대학에 있을 때니까 마음 편하게 먹었죠. 그런데 욕심이 생기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참 후회됩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팬들의 환호가 있는 1군 무대를 떠나 2군에서 전전하는 생활은 정윤성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는 결국 광주 입대를 결정했다.
경남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은 정윤성 ⓒ경남FC
계속된 불운으로 보낸 절망의 시간 결국 광주에 입대한 그는 2005시즌 광주의 주전으로 30경기에 출전해 6골 1도움이라는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자신감도 붙었던 시기다. “수원에 와서 1~2년을 2군에 있다 보니까 팀에서 자리 못 잡고 있을 바에는 군 문제나 빨리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찍 갔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자주 경기를 뛰니까 자신감이 붙어서 경기에서도 자신 있는 플레이가 나왔죠.” 그러나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광주 입대 첫 해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정윤성은 2년차가 되자 출전 경기수' 공격포인트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광주에서는 대게 계급이 올라갈수록 경기 출장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그는 전혀 반대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문제는 ‘자만’이었다. “살짝 나태해졌던 것 같아요. 광주 1년차 때는 이등병' 일병이니까 열심히 뛰었는데 2년차 때는 고참이 되다 보니 운동장에서 느슨했나 봐요. 그리고 곧 제대하니까 몸을 사린 것도 있을 테고.” 결국 정윤성은 2년차 때 16경기에 나섰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광주에서의 부진은 제대 후' 올 시즌부터 복귀한 수원으로 이어졌다. 그는 수원에서 전반기를 뛰었지만 단 두 경기에 나섰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 자신은 이 시기를 가장 힘든 시기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한계인가’라고 생각했어요. ‘여기까지 밖에 안되나’ 생각하면서 많이 좌절했죠. 힘들어서 방에서 혼자 운 적도 있어요.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축구를 그만 둬야 되나 생각했죠. 그때는 잠도 잘 못 잤어요.” 사실 정윤성은 광주 제대 후 수원 복귀가 아닌 타 팀으로의 이적을 생각했다. 그러나 정윤성의 재능을 알고 있는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정윤성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의 이적을 반대했다. 정윤성은 다시 한 번 수원에서의 도전을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상 때문이었다. 그는 올 시즌 전지훈련 첫 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불운으로 전지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프로 선수로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에 운동을 못했으니 몸이 제대로 만들어질리 만무하다. 치열한 선두경쟁을 하고 있는 수원으로서도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놔두고 정윤성을 출전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차범근 감독님과 면담을 했는데 실력만 있으면 부상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 실력을 더 향상시켜서 뭔가 보여드리려고 열심히 했는데 그것이 부담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차범근 감독님 앞에서는 실력을 못 보여드렸어요.” 수원에서의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정윤성은 ‘장전된 총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되뇌이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하루 훈련량을 정해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며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 번 눈물을 흘리고 나니까 속도 후련해지더라고요. ‘포기할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고. 다음 날부터 그 상황을 즐기게 됐습니다.”
슛을 시도하고 있는 정윤성 ⓒ경남FC
”프로가 설 곳은 이 곳' 바로 그라운드다.” 차분히 준비를 하며 전반기를 보낸 정윤성은 경남으로 이적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일년전 수원에서 뛰던 이상태가 경남으로 이적한 후 한 시즌 만에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전례를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솔직히 축구 선수라면 경기에 나가고 싶죠. 경남에서 저를 원했고 저도 수원보다는 경남에서 경기에 많이 나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부터 욕심은 없었는데 우연찮게 첫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서 잘 풀린 것 같아요. 방황 끝에 뛰는 것도 신났고요.” 경남 이적 후 첫 경기에서 골을 넣자 경남의 박항서 감독은 그를 계속 기용했다. 경남의 주포 뽀뽀가 부상을 당한 것도 그의 출전을 도운 계기였다. 그리고 그는 성남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경남이 성남을 꺾은 덕분에 정윤성의 친정팀이라 할 수 있는 수원은 1위 자리를 탈환하는 기쁨을 맛봤다. 정윤성은 의도하지도 않게 친정팀에 도움을 준 꼴이 됐다. “수원 때문에 더 열심히 뛴 것은 아니에요. 그 경기는 저희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한 고비였어요. 오로지 승점을 쌓는 것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신경을 안 썼어요.” “그날 수원 형들이 (송)종국이 형 집에 모여서 우리 경기를 봤대요. 경기 전날 (조)원희 형은 전화로 ‘내일 한 번 하자’라면서 힘을 줬고요. 남들은 수원에 마지막 선물을 줬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런 거 모르겠어요. 전 경남FC 선수에요. 경남에서 주어진 시간에 뛰는 것이 감사할 뿐이에요.” 꾸준한 경기 출장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줬다. 수원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발목 통증도 사라졌고' 경기장을 오겠다는 가족을 말릴 필요도 없다. 이제는 쉬더라도 편하게 잘 수 있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여자친구까지 생겼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과거와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이다. “수원에서는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발목이 아팠는데 여기서는 꾸준히 경기에 나가니까 안 아프네요.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전화도 받고 효자 노릇 하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 지금은 어디든 경기를 보러 오시죠. 지난 밀양에서 가진 경기에서는 친척 50명이 오신 적도 있어요.” “한 시즌 최다골이 광주에 있을 때 넣은 6골인데 이번에 그 기록을 깨보고 싶어요. 더 큰 목표가 있다면 대표팀에 들어가는 거에요. 지금으로서는 큰 욕심이지만 그런 꿈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 같아요. 다치지도 말아야죠.”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성공을 위한 준비과정을 밟고 있는 정윤성은 프로 선수라면 자신이 뛸 수 있는 팀에서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2군에 있는 것보다 경기를 뛸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권하고 싶어요. 한 발 후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프로에서 자리 잡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요. 좋은 팀에서 자리 잡기는 더 힘들죠. 제가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경남에 와서 뛰어보니까 경기를 뛸 수 있는 팀이 좋은 것 같아요. 프로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인정을 받는 거잖아요.”
정윤성의 상승세는 계속된다. ⓒ경남FC
프로와 아마추어'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 한국 프로축구 선수들은 ‘프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소홀한 점이 없지 않다. 한국 축구의 관행이나 계약 조건으로 자신이 뛸 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프로팀에 소속된 아마추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윤성도 마찬가지였다. “경남으로 이적하면서 수원 서포터 홈페이지에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글을 남긴 적이 있어요. 곧 그 일이 얼마나 잘못한 일인지를 알게 됐죠. 한번은 경기를 뛰고 경남으로 돌아가면서 휴게소에 들렸는데 한 경남 팬을 만난 거에요. 그날 골을 넣었는데 그 분께서 ‘곧 수원으로 가시겠네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어요.” 정윤성은 당시 사건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뉘우쳤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이날 가진 인터뷰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는 경남 선수로서 수원과의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지금 저의 팀은 경남FC에요. 경남에 온 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경남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 선수단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저에게 수원은 과거의 팀이에요. 그곳에서의 추억은 접어두고 경남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할 겁니다.” “수원전이 기다려지기도 해요. 저를 보낸 것을 솔직히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싶기도 하고. 제가 골을 넣으면 기분 나빠하실지 모르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끔 경남에서 좋은 결과'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제가 골을 넣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수원 같이 좋은 팀을 꺾어보고 싶습니다.” 23세의'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정윤성은 시련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면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갖춰나간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허우적대던 정윤성의 모습은 과거의 이야기다. 경남으로 이적하면서 성숙해진 그는 경남 선수로서 올 시즌의 당찬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경남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성공의 원동력이에요. 정말 가족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솔직히 함안 클럽하우스에 오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도 동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재밌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서로 잘 챙겨주니까요.” “박항서 감독님과 코칭 스태프는 우리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박항서 감독님은 수비수 누가' 무슨 발을 쓰고 무엇이 약한 지까지 일일이 분석해주시죠. 그런 분석 하시느라 잠도 못 주무시는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시키시는 것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 지 모르지만 우리가 우승을 못할 이유는 없어요. 다른 팀이 비해 선수층이 얇아도 똘똘 뭉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하고 있어요.”
▲ 정윤성 프로필 - 생년월일: 1984년 5월 2일 - 신체조건: 183Cm' 76kg - 포지션: 스트라이커 - K리그 기록: 68경기 출전' 11골 5도움 - 축구경력: 덕천초-동래중-수원공고-수원-광주-경남FC - 대표팀경력: U-16 대표' U-19대표 인터뷰=스포탈코리아 손춘근
 
* 이 인터뷰는 KFA 홈페이지(www.kfa.or.kr)에 게재된 것입니다.
  • 비밀글 여부 체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