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K리그 2년차 경남의 반란' 박항서 매직이 온다

서호정 | 2007-09-21VIEW 1940

이젠 누구도 ‘다크호스’ 혹은 ‘돌풍의 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 강호고' 상대 입장에서는 가장 만나기 싫은 팀이 되었다.

최근 정규리그 5연승으로 거침 없는 질주에 나선 경남FC의 얘기다. 정규리그 5경기를 남겨둔 현재 경남은 11승 4무 6패' 승점 37점으로 성남-수원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경남의 아래에는 울산' 포항' 전북' 서울이 있다. 올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예상 팀으로 지목 받았던 이들을 누르고 그 위에 경남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 창단' 2006년 K리그에 참가한 경남은 K리그의 막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12위를 기록하며 K리그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하지만 컵대회 3위로 희망을 발견했고 그 해답을 발판으로 올 시즌 정규리그의 대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8부능선을 돌파한 경남의 힘을 분석해본다.

▲ 용병덕? NO! 용병술? YES!

경남의 기세를 말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은 ‘용병’으로 지칭되는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다. 올 시즌 경남은 까보레가 15골 7도움' 뽀뽀가 7골 9도움을 각각 기록하며 팀 득점의 60%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두 선수가 없으면 경남의 힘이 반감된다는 지적은 박항서 감독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반박할 부분도 있다. 재정이 열악한 도민구단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외국인 선수를 데려온 경남이 그들을 100%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게 그의 항변이다. 거액의 몸값을 들여야 하는 국내 공격수를 데려오기 힘든 경남은 그나마 있던 김진용마저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장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까보레와 뽀뽀를 최전방에 세워야 했다.

두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이 100%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팀의 조화라는 얘기. 그 예가 최근의 상황이다. 경남은 후반기 초반 3경기에서 1무 2패로 위기를 겪는 마당에 뽀뽀마저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제외됐다. 까보레만이 공격에서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을 박항서 감독은 수원 2군에서 데려온 정윤성과 공오균' 이용승을 적절히 조합시켜 오히려 더 왕성한 공격력으로 연승 시동을 걸게 만들었다.

까보레의 경우 브라질 지역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모따' 이따마르' 두두' 히칼딩요 등 전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보다는 한참 아래로 평가 받던 무명 공격수. 그런 선수가 K리그에 완벽히 적응해 득점 단독 선두를 달린다는 것도 단순히 선수 본인의 능력이 아닌' 팀 스타일에 맞춰 그를 적절히 활용한 감독의 힘과 동료들의 지원이 크다 할 수 있다.

▲ 경남을 알려면 허리를 보라

박항서 감독은 시즌 초 경남의 키워드로 ‘기동력’을 말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이 세계적 강호를 압도했던 힘의 원천으로 K리그에서 성공을 거두겠다는 얘기였다. 현재 경남의 축구를 박항서 감독이 구상했던 그 기동력 축구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팀을 상대로든 허리에서부터 압도해가며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경남의 스타일이다. 전방에서 시작되는 압박에 상대 팀이 실수할 경우엔 곧바로 역습' 득점으로 연결한다.

단순히 뛰는 것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밑바탕에 깔린 것은 경기를 읽는 눈이다. 경남의 중앙 미드필더인 김효일과 김근철의 경우 타팀의 미드필더에 비해 이름 값은 떨어지지만 그 기량만큼은 알짜다. 활동량에서 압박하고 넓은 시야와 패스' 안정된 경기 운영으로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두 선수의 활약을 주목해야 ‘진짜 경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정경호' 박종우' 김성길' 강기원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주며 상대에 따라 플레이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

▲ 김호+히딩크=박항서

박항서 감독은 <포포투> 7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사람으로 김호' 거스 히딩크 두 감독을 꼽았다. 김호 감독은 국내 감독 중 세계 축구의 조류를 놓치지 않는 가장 세련된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 히딩크 감독을 전 세계가 인정하는' 두말할 나위 없는 승부사다. 두 감독 모두 박항서 감독이 오랜 코치 생활 동안 보좌했던 명장들이다.

김호 감독이 준 영향은 선수와 팀을 사랑으로 감싸는 방법이었다. 애정 없는 지적은 잔소리에 불과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후반기 초반 부진 시 단 한마디의 지적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선수들의 동요를 막았다. ‘내가 너희를 믿고 있으니 흔들리지 말고' 우리의 길을 가자’는 게 당시 박항서 감독의 생각이었다. 평소 특정 선수에 대한 칭찬을 삼가는 것도 편애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경계에서다. 출전 기회는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로 결정하지만 선수들에 대한 애정은 공평하다는 게 김호 감독으로부터 이어받은 박항서 감독의 철학이다.

히딩크 감독은 ‘박항서 축구’의 완성을 도왔다. 왕성한 활동량' 확고한 목적 의식의 전술과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드는 세밀한 전략으로 경기를 지배해나가는 모습은 히딩크 축구와 너무나 흡사하다. 특히 약팀을 강팀에 이길 수 있는 팀으로 변모시키는 그들만의 방법(My way)은 두 지도자가 갖고 있는 공통 코드라 할 수 있다.

▲ 상대를 벌거숭이로 만드는 분석의 마법

경남의 또 다른 무기는 철저한 분석에 있다. 전력에서 열세인 팀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상대가 갖고 있는 작은 약점을 큰 구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박항서 감독의 지론이다. 특히 제한된 공격 루트에도 불구하고 팀 득점에서 성남' 수원을 제치고 1위에 올라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까보레와 뽀뽀를 비롯한 일부 선수의 개인 기량에만 기댔다면 이미 K리그의 수비에 막혔을 거라는 게 경남을 바라보는 타 팀 지도자들의 시선이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윤덕여 수석코치' 하석주 코치와 함께 상대팀 수비를 면밀히 분석해 상황에 맞는 공격 전술과 루트를 짠다.

분석의 마법이 제대로 먹힌 대표적인 예는 성남전 2-1 승리였다. 당시 동점골을 터트린 박종우는 “비디오 분석 때 성남 수비가 역습 시 한쪽으로 쏠리는 데 주목했다. 까보레가 상대 수비를 유도하면 윙백인 내가 최전방까지 치고 들어가 반대편 페널티박스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따라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대구전에서도 정윤성은 분석의 힘을 강조했다.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게 배치됐던 정윤성은 까보레와 뽀뽀가 측면으로 넓게 벌려 상대 수비를 헤치면 치고 올라갔고 결국 선제골을 잡아낼 수 있었다. 정윤성 역시 “감독님의 분석을 따라가면 백이면 백 맞아 떨어진다”는 말을 남겼다.

▲ ‘외룡군단’의 기적에 도전하는 ‘도민군단’

올 시즌 경남의 상승세를 보고 있으면 2년 전 K리그에 ‘외룡군단’ 바람을 일으켰던 인천 유나이티드의 파란이 오버랩 된다. 창단 2년 차의 부족한 것 투성이인 시민구단이지만 장외룡 감독을 중심으로 끈끈하게 뭉친 조직력의 힘' 여기에 적절하게 가미된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으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던 인천은 챔피언 울산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경상남도 전체를 기반으로 ‘도민구단’이라는 새로운 광역연고제를 도입한 경남도 올 시즌 팀의 선전으로 도 전체를 축구열기로 물들여가고 있다. 연승 행진 당시 밀양을 방문한 경남은 빗 속에서도 만원 관중이 들어차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귀네슈 감독의 서울과 맞붙었던 경남은 일방적인 경기 끝에 1-0으로 승리' 밀양 시민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3' 4위로 플레이오프 진출 시 홈에서 경기를 치르는 메리트가 있는 만큼 경남은 이 기세를 이어받아 오는 10월의 ‘축구축제’를 제대로 즐겨보겠다는 심산이다.

“플레이오프는 1차 목표일 뿐이다. 그 다음엔 더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다”며 또 한번의 마법을 준비 중인 박항서 감독의 경남FC. 지금 K리그에는 ‘박항서 매직’이 휘몰아치고 있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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