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한 번에 붙었는데 프로 선수의 꿈은 4수 끝에 이뤘네요. (웃음)”
프로축구 데뷔전을 치른 경남FC 신인 공격수 유준하(22·사진)는 싱글벙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일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김천 상무와의 2023시즌 K리그2 원정경기에 선발 출전해 약 30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준하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2부 리그이긴 하지만,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를 처음으로 밟았기 때문이다. 유준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낮에는 서울대(사범대 체육교육학 전공)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4부 리그 노원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아마추어 선수였다. 올 시즌 경남에 입단한 뒤 경기까지 치르면서 1988년 황보관, 1989년 양익전, 1991년 이현석 이후 32년 만에 프로축구 무대를 밟은 서울대 출신 선수가 됐다. 유준하는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무대를 밟아 기쁘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공부보단 축구가 어려운 것 같다”고 밝혔다.
10세 때 서울 신정초에서 축구를 시작한 유준하는 공격수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 K리그1 강원FC 유스팀인 주문진중(강원)으로 스카우트됐다. 강릉중앙고(강원) 2학년 때 출전한 2018 금강대기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의 문턱은 높았다. 전국대회 활약에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K리그 팀은 없었다.
이때부터 유준하는 축구 대신 공부로 진로를 수정했다. 그는 ‘운동 후 공부도 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같은 학년 300명 중 1등이었다. 유준하는 “운동부는 수업 시간엔 잠을 잔다는 편견이 있는데 나는 악착같이 수업을 들었다. 아는 게 시험에 나오니 재미도 있고 동기부여가 돼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수시 전형을 통해 합격했다. 유준하는 “프로는 못 갔지만, 고3 때 여러 대학 축구부의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다”며 “나는 강릉중앙고에서 40년 만에 나온 서울대 합격생”이라고 말했다.
20학번 새내기의 생활은 웬만한 고시생보다 더 빡빡했다. 오전 8시부터 강의를 듣고 오후 4시부턴 축구를 했다. 처음엔 서울대 축구부에서 뛰었다. 별명은 ‘서울대 네이마르’였다. 2학년이 된 2021년엔 테스트를 통해 4부 노원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강의가 끝난 뒤 2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오후 6시 팀 훈련에 참여했다. 과제는 주로 원정경기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했고, 귀가해서도 시험공부를 했다. 잠은 이동 중에 쪽잠을 잤다. 강의 중 코피를 쏟은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 꾸준히 프로팀 테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프로로 향하는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초 그는 축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좌절했다. 주변에선 “서울대까지 갔으니 이젠 축구를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유준하는 ‘2022년, 딱 1년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22시즌 K4 27경기에 출전해 7골 2도움을 기록하며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드리블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악착같이 공을 다투는 그의 플레이는 설기현 경남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설기현 감독은 “기술과 센스는 이미 프로 수준이다. 4부에서 뛰기엔 아까운 실력이다. 부족한 체력과 체격을 키운다면 뛰어난 선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휴학 중인 유준하는 “내 학점이 평균 A인데, 축구에선 A+에 도전하겠다. 우선은 프로에서 살아남겠다. 그다음엔 국가대표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기사제공 중앙일보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