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불난 집’ 경남, 언제 불 끌 겁니까?

관리자 | 2015-07-10VIEW 1389

(베스트 일레븐=창원)

▲ 김태석의 축구 한잔

“경남 FC는 내가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팀이다. 여기서 정말 좋은 추억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K리그와 FA컵에서 좋은 성과도 냈고, 이 팀을 발판으로 국가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았으니 안 그렇겠나? 그래서 무척이나 안타깝다. 관중도 참 많았던 데다 창원 축구센터처럼 좋은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이 팀이 K리그 챌린지에 있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K리그 챌린지 강등 자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경남 팬들은 결코 잊지 못할 명장, 지금은 대구 FC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조광래 대구 FC 사장의 말이다. 지난 8일 저녁 7시에 벌어진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2015 21라운드 원정 경남전을 관전하러 창원 축구센터를 찾은 그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리하게 된 친정 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썸네일
해체라는 단어가 남긴 주홍 글씨

2006년 창단해 FA컵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거두며 한때 도·시민 구단의 롤 모델로 거론됐던 경남의 현재는 초라하다. 경남은 2014시즌 K리그 클래식 11위로 임한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광주 FC에 패해 K리그 챌린지로 추락했다. 강등이라는 나쁜 결과가 팀의 위상을 크게 깎아 버렸다. 강등으로 말미암아 팀이 축소 개편됐고, 이 때문에 좋은 선수들도 대거 팀을 떠났다. 비가 내린 악천후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으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붐볐던 창원 축구센터의 풍경은 추억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었다. 2006년 창단 후 쌓아 가던 공든 탑이 무너진 자리는 폐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된 말로 어떻게 이토록 팀이 망가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웠다.

오직 강등이라는 결과가 경남을 이토록 망가뜨린 것일까?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2부리그행은 도리어 팀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다. 1부리그라는 무대는 잘 준비하면 다시 오를 수 있다. 경남의 진짜 문제는 강등이 표면화됐던 지난해 연말 한때 해체 얘기까지 오갔던 어수선한 분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어수선한 분위기는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 겸 경남 구단주가 지난해 연말에 남긴, 경남이 강등당할 경우 팀을 해체할 수도 있다는 폭탄 발언에 원인이 있다. 실제로 팀이 공중 분해되는 일은 없었지만, 해체 운운했던 오너의 한마디는 경남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한때 도·시민 구단의 롤 모델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경남이 그 한마디에 지역민에게는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로, 정작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 할 선수들에게는 몸담아서는 안 될 난파선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대구전에 앞서 만난 박성화 경남 감독은 그야말로 한숨만 내쉬었다. 최근 구단 이사회로부터 부진한 성적에 대해 해명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 감독은 이런저런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지만 감독이라는 자리는 본디 성적으로 평가받는 자리인 만큼 책임을 묻는 것을 피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 감독 처지에서는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지난 1월 7일 경남을 재건하라는 소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실상 재건을 위해 박 감독이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경기에 내보내는 것밖에 없었다. 이미 외적 힘에 의해 스쿼드가 강제적으로 구성된 상태였고, 자신의 색깔을 더할 선수를 보강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FA(자유 계약) 선수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박 감독은 지난해 경남 공격을 책임졌던 A 선수를 만나 잔류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A는 FA 신분이라 연봉만 맞춰 주면 다시 경남 선수로 뛸 수 있었다. 하지만 A는 박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심지어 경남이 제시한 금액보다 적은 보수를 제의한 타 팀 유니폼을 입었다고 한다. 강등당한 팀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단주가 해체 운운하면서 생기게 된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생계를 위협하는 해체 발언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선수들이 어떻게든 경남을 떠나려고 했다는 얘기다. 이 나쁜 인식은 전력 보강이 절실한 현재 경남에도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예산 부족으로 선수 보강이 어려운 실정인데 나쁜 성적이 나올 경우 해체될 수도 있다는 이미지가 심어졌으니 누가 선뜻 계약서에 사인하겠는가?

아직도 내홍에 시달리는 경남

설상가상으로 내부에서는 여전히 내홍이 끊이질 않고 있으니 걱정이다. 박 감독과 더불어 구단을 회생시키라는 소임을 부여받은 김형동 대표이사는 지난 6월 말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표면적으로는 시즌 개막 후 홈에서 승리가 없는 팀의 부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시즌을 갓 절반 소화한 지금, 더군다나 선수 보강 시기인 7월을 앞두고 물러난 것은 타이밍상 다소 황당했다.

이를 두고 지역 일간지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박 감독과 사이의 불화설을 원인으로 제기하고 있다. 불 끄라고 동시에 투입한 두 소방수가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불구덩이 속에서 멱살잡이했다는 얘기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떠난 김 전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박 감독의 팀 내 입지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정말 성적 부진이 원인이라면, 대개 감독이 경질되고, 수습 차원에서 대표이사가 책임지기 위해 동반 사퇴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경남은 감독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대표 이사가 물러났다. 대단히 이례적 상황이다.

이는 김 전 대표이사가 불화설을 빚은 박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전체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고 보는 견해가 옳을 성싶다. 홍 구단주는 팀을 혁신하면서 본디 김 전 대표이사에게 구단 행정, 박 감독에게 선수단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김 전 대표이사에게는 팍팍한 여건이지만 구단 살림을 잘하고 박 감독에게는 선수를 잘 육성해 좋은 성적을 내라는 소임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떠난 김 전 대표이사가 홍 구단주를 만나 내세웠다는 퇴진 이유는 권한 밖인 성적 부진이었다. 감독이 져야 할 책임을 자신이 대신 짊어졌다는 건 박 감독을 향한 대외적 압박 카드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경남도 체육회 인사가 중심이 된 구단 이사회는 박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 성적 부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경남도에서도 구두로 코칭스태프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심을 잡아야 할 박 감독은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다.

잘잘못을 떠나 김 전 대표이사가 사퇴함으로써 구단 운영에 대한 최종 결제 책임자가 사라졌으니, 구단 행정과 선수 보강 등 모든 살림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는 것도 문제다. 권영민 경남도 체육회 전 부회장이 수습하기 위해 대표이사 대행직을 맡긴 했으나, 이 혼란은 한동안 경남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홍 구단주가 나서서 팀을 수습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도지사로서 격무에 시달리는 데다 요새는 ‘1억 원짜리 그 사건’으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져 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실무진이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뜨거운 열정으로 현장을 누벼도 총괄 지휘할 이들이 부응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남이 팀을 재건하고 K리그 클래식 복귀를 목표로 하는 건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다.

“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아직 경남에는 많은 축구팬이 있다고 본다. 다시 바탕을 다져 경기 내용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어필한다면,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조 사장은 친정 팀 경남에 이런 덕담을 남겼다. 경남에 아직 많은 축구팬들이 있다는 이 말을 부디 기억했으면 한다. 경남의 대표적 슬로건은‘도민 속으로’다. 이런 모습으로 도민 속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존재의 가치를 잃어선 안 된다. 지난해 말 붙은 불이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재빨리 진화하고 다시는 화마에 휩싸이지 않도록 잘 가꿔 나가야 한다. 이제는 합심해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건강한 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뜻을 모아야 한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일레븐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 비밀글 여부 체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