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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 2007-11-22VIEW 4517

2005년 8월. 고향 경남은 무더위가 한창이었습니다. 생애 첫 감독 계약서를 받아 들고 창원종합운동장 앞을 걸어 나오던 사이' 쉼 없이 땀이 흐르던 미간에 자꾸 힘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 해 여름은 그렇게 뜨거웠고' 그렇게 긴장했었습니다. 거듭 고민했습니다. 축구로 성공하겠다며 무작정 상경했던 15살 사춘기를 떠올리며 고향에서의 첫 감독직을 쉽게 놓을 수 없다는 아쉬움에 며칠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절대 떠나 보내드릴 수 없다”는 발신자를 알수 없는 전화 메시지에 눈시울이 흐려지기도 했고' “최소한 계약기간은 채워야 한다”는 김태호 도지사님의 거듭된 만류에 목이 메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심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전형두 사장님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원치 않던 불협화음을 냈던 것은 전적으로 저의 부덕의 소치였습니다. 시즌 종료와 동시에 전사장님이 사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반쪽의 책임을 가진 제가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새로운 사장님과 새로운 감독님이 오셔서 구단을 ‘새로운 성장기’로 이끌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아낌 없이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부임 첫 해' 연패의 늪에서 해매일 당시 무작정 작전판 앞에서 머리를 부여 잡기도 했고 답답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올해 1라운드를 3위로 마치면서 날아오를 듯한 희열을 느꼈지만 2라운드 시작과 함께 이어진 1무2패로 흔들릴 때는 절벽에 선듯한 위기감도 맛보았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그라운드에서 더 크게 소리를 질렀고' 회의실에서 더 오래 코치들과 머리를 맞댔습니다. 팬들의 사랑은 과분했습니다. 폭우 속에서 웃옷을 벗어 던진 채 목이 터져라 ‘경남 FC’를 외치던 서포터스들의 모습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 오르는 감동을 맛봤습니다. 한 서포터스가 선물해 준 오렌지 넥타이는 세상에 하나 뿐인 소중한 ‘행운의 부적’이었습니다. 올해 후반기' 갈수록 늘어나는 관중들을 보면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2007년 10월. 포항과의 준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동안 온 몸은 흥분과 긴장으로 불덩이였습니다. 늦가을의 쌀쌀함이 내려 앉은 창원의 심장부에서 저는 그렇게 팬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뜨거움을 맛봤습니다. 올해 가을도 2년 반 전 처럼 그렇게 뜨거웠습니다. 이제 고향 팬들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떠나려 합니다. 지난 2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코칭스태프 및 구단 직원들' 나를 믿고 한치의 주저 없이 몸을 던졌던 선수들' 운동장과 TV 앞에서 한결 같이 경남 FC를 응원해주신 도민 여러분들 모두 죽어도 잊지 못할 값진 사랑을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운명처럼 새로운 모험에 몸을 던질 것입니다. 팬들 역시 운명처럼 경남 FC를 지키시리라 믿습니다. 너무 소중하고' 너무 사랑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박 항 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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